금사사(金沙寺)

10일을 금사사에서 머무노라니

옛 나라 생각 삼추와 같네.

밤 조수에 기분은 맑은데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슬프구나.

오랑캐 남아 있어 자주 칼을 매만지고

지음이 없어지니 거문고를 끊고 싶으나,

평생의 출사표를

난리에 임하여 다시 길게 읖노라.

이는 당시 고이식(高而順, 고경명)의 전사 소식을 들은 후에 지은 시이다. ‘10일’이 ‘열흘’을 의미하는 것인지, 8월 10일임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문청공은 또한 이 즈음에 조여식(趙汝式, 조헌)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조여식 제문 (祭趙汝式文)〉을 짓게 된다.
 
吾友汝式學孔顔而 慕諠原欲死於直終 死於節 吁嗟乎汝式
 
나의 벗 여식은 공자, 안자를 배우고 가의와 굴원을 사모하였소.
바른 일에 죽으려 했는데 끝내 절의에 죽었구려.
아! 여식이여
 
조헌은 《선조수정실록》에 천문을 살펴 왜란을 예견하였다는 특이한 인물로 소개된다. 처음에는 문청공을 좋지 않게 여겼으나, 공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에 막하에 있게 된 이후로는 공과 가깝게 되었다고 한다. 조헌은 충청북도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공은 고경명, 조헌과 이후의 일을 논의하려 했으나 그 시기가 맞지 않았다. 《송강집》에는 의병과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두 의병장에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문청공은 초기에는 양도의 군대를 강화도에서 지휘하였는데,  조정에서는 10월 13일에 문청공에 육지로 이동하도록 명하여 10월 25일 장계를 올리기 전에 거처를 옮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1592년 8월 중순 ~ 10월 중순까지의 2달 정도의 기간이 공이 강화도에서 머문 기간이다.
 
이 시기에 해당되는 기록으로 《송강집》에 날짜를 알 수 없는 장계와 9월 25일, 28일의 장계, 《강도지》에 9월 9일, 11일, 14일, 10월 3일 장계가 인용되어 있다.
 
〈송강연보〉에는 문청공이 강화에 이르러 차(箚, 상소)를 올려 ‘임금의 행차가 요(遼)를 지나서는 안되며, 동궁(세자)는 호남에, 명나라 군사가 오지 않으면 임금은 남(강화도)으로 바다를 건너 양호 백성들의 원한스런 마음에 보답할 것’을 주장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문청공이 강화도에 도착한 초기에 올렸을 듯한 장계가 있다. 이는 찰방 신흠(申欽), 사과 송영구(松英耈), 사정 김상용(金尙容)으로 종사관(從事官), 참종 오윤겸(吳允謙)으로 참모를 삼았음을 알리는 내용으로, 찰방 신흠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영일정씨문청공파세보》에서 인용)
 
임진년 가을에 난을 피하여 강화에 있을 때 철은 체찰사로 행조(行朝)에서 강화부(江華府)로 와 머무르면서 내가 강화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군관(軍官)을 보내 나를 종사관(從事官)으로 부르시므로 나는 행재(行在)로 가겠다고 사절하였더니, 철이 말하기를 “조정에서 내린 명령이 아니라 그러는 것인가” 하고 곧 조정에 계(啓)하여 알리고 다시 불렀다. 나는 조정에서 보낸 임명장을 받은지라 감히 다시 사양하지 못하고 그 막하(幕下)로 달려가서 같이 일을 한 것이 거의 반년이었다.
 
9월 9일 중양절 전날에 지은 시가 있다.
 
중양(重陽) 전야에 강도(江都)의 여우(旅寓)에 있으면서
 
강도(江都)라 밤중에 비바람치고 길손은 난리 속에 막혀있구려
한없는 시름이라 한없는 눈물 바닷마을 어디메 술집이 있냐.
 
문청공은 9월 9일, ‘김천일(金千鎰)의 병력은 1,800명이지만 생기가 있고, 최원(崔遠)의 병력은 4천이지만 지쳐있으며, 강화도는 남도의 통로로서 뿐 아니라 경기도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지키는 것이 중요하여 권징(勸懲) 이하 장군과 함께 수비를 확실히 한 후 떠날 것임’을 알리는 장계를 올렸다.
 
9월 11일에는, ‘강화도 수비는 중요하며, 주변에 주둔하는 왜군을 공격하고 육지로 건너가 의병을 모집하여 서울을 수복할 계획’에 대한 내용을 장계로 올렸다. 
 
김천일은 9월 김포와 양천 지구의 의병을 지휘하여 왜군을 공격, 패주시켰고, 양도와 경기도의 군사와 합동으로 왜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양화도전투, 〈김천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이후, 9월 14일에는 강화도의 말을 차출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 9월 25일에는 임해군과 순화군의 구출에 관한 건, 9월 28일에는 강화도와 충청 · 전라도에서 과거를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 10월 3일에는 이빈의 근신에 관한 건을 장계로 올렸다.
문청공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강도(江都)에서 호남(湖南)으로 내려가다 배 안에서 짓다
 
우수수 잎사귀는 떨어지는데 아득아득 물결은 일어나는구나
변방을 나가는 오늘에 있어 그 뉘가 대풍가를 기억하는지.
 
다음은 다시 여수로 내려갈 때에 지어진 시인 듯하다. (‘방답’은 전남 여수에 있다.)
 
전선(戰船)을 타고 방답포(防踏浦)로 내려가다
 
전선에 돛을 펴고 한바달 질러가니
수없는 봉우리들 거꾸로 선 칼끝 같네.
극동으로 곧장 나가 소혈을 드리치면
적을 막을 금성탕지(金城湯地) 소용이 없쟎겠나
 
이듬해 1월, 조·명 연합군에 의해 평양이 수복되면서 공은 다시 조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해 4월 말에 한양이 수복되었고, 조정에서는 5월에 사은사로 공을 명에 파견하게 되는데, 다음 시는 그 즈음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궐(城闕)은 불에 타서 재가 되었고
이름난 동산도 풀만 묵었네.
그 당시 푸른 소나무 아래는
학 두루미 다시 온 일이 없다네.
옥상에는 삼경의 달이 걸리고
대(臺)에는 한 그루 매화가 남아.
마음을 상케 하는 석계(石溪)의 물은
여전히 이끼빛처럼 새파랗고.
 
문청공은 윤 11월에 사은사로 명에 다녀왔으나 모함을 받아 사면(윤11월 22일 이후), 강화도에서 우거하게 되었고, 12월 18일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공은 사은사로 다녀오는 중에 병을 앓았고, 강화도에서의 생활은 곤궁했다고 한다. 사면 후 강화도에서의 생활은 1개월 정도가 된다.
 
《송강집》에는 또한 12월 6일 즈음(아마도 그 이전)에 가족들에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12월 6일은 공의 생일이었는데, 날씨 탓에 가족들이 입춘 이후에 찾아올 것을 권유하였다. 그 내용에 따르면, 당시에는 식량이 떨어져 노비들도 굶는 형편이었고, 뭍(황해도 연백군이나 해주)으로 가려 하나 날씨가 춥고 공함(公緘)이 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당시 공은 병중(病中)이기도 했다.
 
다음 시는 12월 6일 밤의 것으로,  《송강집》에는 이 시가 가장 나중에 지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납월(臘月) 초六일(12월 6일) 밤에 앉아서
 
외론 섬에 나그네 되어 해조차 저물었고
남쪽에선 아직 왜적을 물리치지 못했다네.
천리라 편지 소식 어느 날에 올려는고
오경의 등잔불은 뉘를 위해 밝은 건가.
사귄 정은 물과 같아 굽혀있기 어렵고
근심가닥 실오리처럼 풀면 도로 얽히네.
다행히 원님이 준 진일주(眞一酒)가 있어
눈 쌓인 궁촌에 화로를 끼고 마시노라.
 
마지막 한 달 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과거를 회상하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술을 좋아하고 시를 잘 짓는 이생 정면이라는 이에게 보내어 답글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쪽 나라에 한 선비가 있어
얼굴이 붉고 마음도 또한 붉더라
술을 사랑하되 돈은 사랑하지 않고
시를 좋아하며 또 손님을 좋아하네.
 
서울이라 서쪽에 집을 두고서
십년을 책 한 권 손에 들었소.
연구가 심오한 경지에 가니
남이 일능이라면 자신은 백능.
 
시끄러운 명리의 마당이라면
머리를 흔들며 백안으로 보네.
내 일지기 벼슬을 권했더니만
웃으며 저 구름을 가리키더군.
 
이 사람 세상에 처하는 동안
그 지조 돌같이 굳건하구려.
용산정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마침 신묘년 액을 만났네.
 
맑은 이야기 회해랑 뒤섞이어
술 실컷 마시니 강천이 저물었네.
갑자기 영외의 이별이 생겨
물 위 뜬 마름인 양 종적 없더니
 
근자에 용만성에서 서로 만나
한서가 바뀌도록 만성을 마주 대했네.
한 마디 말에 세 번 한탄 곁따르니
강산이 예전과 달라졌노라.
 
융마의 소굴에서 해를 넘겨서
임금의 수레 변방으로 떠나가고.
의관은 견양에서 짓밟히자니
살기가 천지에 가득 쌓여라.
 
우리 임금 지극하신 정성이 있어
천자(天子)가 은택을 드리웠기로
이윽고 더러운 것 쓸어버리고
돌아보며 국토를 맑게 했지요.
 
전하는 소문으론 두 분의 왕자
심유적 장군과 함께 돌아오고
또 들으니 송경략 공을 이루어
전쟁을 파하게 되었다 하네.
 
늙은 몸이 죽지 않아 다행이던가
왕업의 재건을 보는군 그래.
수건을 적시는 목메인 눈물
기뻐서 넘어질 듯 시름 더하네.
 
여보게 붉은 코 나와야 하네
세상을 건지는 일 그대 책임 아닌가.
권하나니 평생의 학을 가지고
천하의 집으로 돌아를 오소.
 
순임금의 의상을 만들어 내어
믿음 솜씨로 도척을 놀리오.
붉은 코 두 번 절하며 하는 말이
좋기는 좋지마는 내게는 맞지 않소.
 
끝끝내 나의 졸(拙)을 지킬 터이니
그만두고 다른 말씀 다시 청하오.
선생이 허허 웃고 이르는 말이
완고하구나 그대의 성벽이여
 
존망은 범초가 상동하다면
득실은 한판의 바둑 같은 걸.
평생 두고 태현경 읽어봤댔자
구원의 속백을 기필 못하느니.
 
노쇠한 나는 만사에 게을러져서
형역을 싫어한 적 오래였다오.
송강의 농어가 생각이 나서
왕교의 부석을 드고 싶어.
 
그대는 가상의 해동창 보소
언제나 하늘 날을 나래를 다듬거든.
붉은 코야 그대는 아니 가려나
춤추는 옷소매 땅이 좁아 걸리나니
하늘 밖에 서로 만나 천천히 노닐게나
우리들 이름은 사적(死籍)에서 벗어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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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영일정씨문청공파세보》
* 《송강집》
* 《강도지》 - 1932년에 출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